커피를 줄이기 시작한 건 건강 때문이 아니었어요

어느 날부터 저녁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잤어요.
원래 커피를 꽤 마시는 편이었어요.
아침에 습관처럼 한 잔,
점심 먹고 나서 한 잔,
오후에 졸릴 것 같으면 또 한 잔.
하루에 서너 잔은 그냥 넘어갔어요.
그게 몇 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거든요.
자정 넘어서 마셔도 누우면 바로 잠들었고
다음 날도 멀쩡했어요.
그런데 언제부터인가
저녁 여섯 시에 마신 커피 때문에
새벽 두 시까지 뒤척이는 날이 생겼어요.
처음엔 그냥 피곤한 날이 있는 건가 싶었는데
그게 한 번이 아니었어요.

커피 때문인지 한참 후에 알았어요.
잠이 안 오는 이유를 딱히 찾지 못했어요.
스트레스가 많아서 그런가,
날씨 때문인가,
나이 들면 원래 잠이 없어지는 건가.
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.
그러다 어느 날 저녁에 커피를 안 마셨더니
그날은 잘 잤던거에요.
다음 날 저녁에 또 마셨더니 또 못 잤고요.
그때 알았어요
지금 내 몸에 커피가 문제이구나...
예전에 분명히 이러지 않았는데
언제부터 이렇게 된 건지 정확히 기억도 안 나고
딱 어느 날을 기점으로 바뀐 게 아니라
꾸준히 무언가가 바뀐 것 같아서
좀 당황스럽더라고요.
내 몸인데 내가 모르고 있었다는 걸요.
찾아보니까 나이 탓이 맞았어요!
카페인을 분해하는 속도가
나이 들면서 느려진다고 하더라고요.
20대에는 카페인이 몇 시간이면 분해됐는데
40대가 되면 같은 양을 분해하는 데
두 배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.
그러니까 저녁에 마신 커피가
예전엔 자기 전에 다 분해됐는데
지금은 새벽까지 남아있는 거였어요.
몸이 이상해진 게 아니라
원래 이렇게 되는 거라는 걸 알고 나니까
납득은 되는데... 좀 씁쓸한 거 있죠...
인터넷으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찾아봤는데요.
카페인이 커피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
이때 제대로 알았어요.
초콜릿, 녹차, 에너지드링크에도 들어가 있거든요.
저녁에 달달한 거 먹고 싶어서
초콜릿 몇 개 집어먹은 날도
잠을 뒤척였던 적이 있었는데
그것도 같은 이유였던 것 같아요.
한 가지를 조심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.

끊는 대신 시간을 정했어요.
완전히 끊는 건 솔직히 자신이 없었어요.
아침에 커피 없이 하루를 시작하는 게
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서..
공감하시는 분들 있으시리라 봐요.
그래서 오후 두 시 이후로는 마시지 않기로 결심했어요.
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그냥 시간 하나 정해봤어요.
처음 며칠은 오후에 괜히 허전하고
기분도 안 좋은 것 같고..
커피를 마시는 행위 자체가 루틴이 돼 있어서
뭔가 손에 들고 싶은 느낌이 있었어요.
그냥 물을 마셨는데
처음엔 그게 입이 좀 심심했어요.
일주일쯤 지나니까 적응은 됐어요
오후 두 시 넘으면 커피 생각이 자연스럽게 줄었고
억지로 참는 느낌이 아니게 됐어요.
아침이랑 점심 먹고 나서 한 잔씩은 마셔요
하루 두 잔으로 줄어든 거긴 한데
줄이려고 노력한 것보단
시간을 제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네요.
이게 오히려 더 오래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.
의지로 버티는 게 아니라
그냥 서서히 바꾼다고 생각하니 스트레스받지 않았어요.
짐은 확실히 나아졌어요.
누우면 바로 잠드는 건 아니지만
새벽까지 뒤척이는 일은 없어졌고요.
다음 날 아침이 예전보다는 덜 피곤하고
몸도 덜 무거운 것 같았어요.
건강 때문에 줄인 것보다는
그냥 잠을 자고 싶었고
다음 날 너무 피곤한 게 싫었어요.
갑자기 건강을 챙기겠다는 다짐은 없었어요
나이 드는 게 이런 식인 것 같아요.
거창한 결심으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
몸이 먼저 신호를 보내고
거기에 맞춰가는 것.
뭔가 대단한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닌데
어느 순간 달라져 있는 나를 느낄 수 있었어요.
좀 억울하긴 한데
그게 나이 드는 거라면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아요
억지로 버티는 것보다는요.
어디서 읽었는데 건강하게 살고 싶으면
뭔가를 더 하려고 하지 말고
하던 것 중에 몸에 안 맞는 걸 하나씩 빼라고 하더라고요.
커피 시간을 줄인 것도 따지고 보면
그런 거였던 것 같아요.